◈ 미수(米壽)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승과 저승을 몇번
넘나드셨을까..질긴 어머니의 명줄은 짧은 세상을 살다가신
어머니 친족들의 명을 하느님이 이어 놓으시는듯 싶다.
외조모님과 외조부님 그리고 외삼촌들까지..
우리가 세상에 태어났을때는 이미 존재하지 않으셨으니..
지금은 '노인 수발보험'이란 노인복지 제도가 생겨났다.
아직은 몇몇 지방에서만 실행하고 있다지만 앞으로는 점점
범위를 늘려 혜택을 많이 받을수 있도록 할것이라 했다.
혹시라도 불편한 노인분을 모시고있어 고통을 겪고 있는
가정이 있다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문의를 하세요~☆
▲ 지난 여름 막내아들의 재롱에 즐거워 하시던 모습..
("엄마! 젖먹어~ 전에 엄마가 줬으니 이젠 내것먹어~")
굳이 존칭어가 필요없는 그들사이..딱딱한 느낌은 거부한다.
인생의 의미를 안다는 知天命인 아들의 나이일지언정
母를 향한 재롱은.. 꺼리낌도 부끄러움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때만해도 걸어 다니시고 용변도 스스로 해결 하셨는데..
▲ 증손의 돐을 보고가신 다음날.. 많이 피곤하셨는지,심기가
불편 하셨는지 쓰러지셨다. 대수롭지않게 생각한 동생은다음
날 병원을 찾아갔단다. 작은병원에서 큰병원으로 가라고해서
병원을 찾아 다니느라 시간도 더 지체되었다 했다.
뇌경색은 쓰러지신뒤 5시간 전에만 빨리 병원으로가 처방을
받으면 쉽게 치료가 될수 있다고 한다.
당황하여 미쳐 대처하지 못한 상황이 병을 악화시킨 것이다.
조금 호전되어'한강 성심병원에서 재활치료 받으시던 모습..'
▲ 엄마의 병원 생활을 위로차 막내가 구입한 작은 오디오..
젊은 애들이나 끼고 다니는 이어폰을 노인에게 씌워놓고는
사진을 찍어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언니와 나는 동생이 찍어놓은 사진을 보며 한참을 웃었다.
민요,흘러간가요.. 옆의 환자들을 의식한 이유도 있지만
귀가 어두우셔 작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엄마를 위한 배려다.
동생의 행동을 우리가 그냥 웃슴으로 넘겼지만..
따듯한 마음을 지닌 막내의 깊은속은 한없이 예뻐보였다.
▲ 병세가 많이 호전 되시어 재활치료를 시작 하던중, 갑자기
악화되셨다. 정신은 맑은데 식사를 전연 못하시는 때문일까?
콧줄에 낀 호스로 환자용 맑은 죽을 넘겨드린다. 그 와중에도
당신이 살던 집이 그리우신지 매일 "집으로 가자"며 조르신다.
'돌아가실 준비려나?' 당장이라도 병원을 떠나시면 일이 날것
같아 결정을 못 내리고 갈팡질팡 하였다.
담당의사도 어짜피 재활치료도 못하시고 죽과 약으로 연명하
시니 집에가서 잘 해드려 보라 권한다.
집에 대한 그리움을 해소시켜 드리는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당신이 소원하는 시골집으로 모시기로 했다.
▲ 마지막이 아니실까..하는 염려속에 코에낀 호스를 부착한채
시골집으로 모셔왔더니.. 생각보다 오히려 건강이 좋아지셨다.
큰 오빠가 돌아가신 2년전부터 막내집에서 생활 하시다보니
당신이 평생 사셨던 시골집이 많이 그리우셨던 모양이다.
마음에 품은 한이 풀리셨는지 평온해 보이는 모습이셨다.
"엄마 뭐 드시고 싶으면 사다달라 하세요"라며 신권 백만원을
손에 쥐어드렸다. 그동안 못해드린 작은딸의 마음이랄까..
막내들 둘이 돈좀 달라며 손을 벌리자 침을발라 얼굴에 붙혀주
시며 재밋어 하신다."그건 언제 배웠댜~" 동생이 엄마를 얼른다.
▲ 혀가 꼬이고 입이 돌아가셨기에 식사도,말도,행동도 제대로
할수없는 엄마에게.. 막내는 훈련을 강요한다.
"엄마! 언니한테 사랑해~ 해봐!" "사다내~" 도무지 알아들을수
없는 발음.. "응! 엄마 나도 사랑해~" 나도 팔을들어 해 보인다.
어린애보다 더 어린 모습이지만, 마음은 즐거움이 배어나신다.
동생의 애정어린 보살핌은 못쓰던 팔과 손을 머리까지 올렸다.
병원에서 퇴원해 오던 이튿날 동생이 다급히 전화를 해왔다.
"언니 엄마가 코의 호스를 다 잡아뺐어!" 난감했다.
"어쩌니 가정방문 의사를 부를까? 내가 들어가 병원으로 갈까?"
동생과 나는 서로들 어쩔줄몰라 하다가..
"어디 그냥 둬봐 떠 먹여드리고 빨대로 드시게 해볼테니.."
동생이 상황을 보며 다시 전화를 하겠다했다.
다행히 빨대로 조금씩 드시게 해 고비를 넘겼다. 시간 시간이
간식,약,죽에 재롱까지 어찌나 정성껏 엄마를 간병해 드리는지..
나로선 엄두도 못낼일을, 막내의 간병이 엄마를 다시 소생시켰다.
▲ 시골집에 모셔다놓은 뒤로 하루도 빠짐없이 드나들었다.
보름에서 최대 한달까지만 시골에서 지내고.. 병원으로 가기로
엄마와 약속하고 모셔온터라 동생이 그동안 간병 하기로했다.
택지개발 사업으로 인해 마을과 주변 전체가 헐리게 되어있다.
미리 알고계신 엄마도 당분간만 있어야 한다는 단념이 쉬웠다.
동생에게 간병비를 주지만, 힘든일을 맡겨놓으니 미안하고..
시골이니 끼니 꺼리도 챙겨주려면 매일 드나들밖에..
"네가 지극정성이구나" 동생한테 비할수없는데 과찬을 듣는다.
▲ 사람은 평생을 배우며 산다는것을 동생들을 보며 다시한번
깨닫게된 시간 들이였다. 처한 상황이 힘겨워도..
엄마에게 웃슴을 주려 애쓰는 동생의 행동들은, 머쓱해 재롱을
떨줄 모르던 나를 어느새 엄마앞의 재롱동이로 만들어 놓았다.
여동생의 속옷을 가슴에 붙히고 밥을 한담시고 동분서주 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시는 엄마는.. 우스워 어쩔줄몰라 하신다.
엄마에게 엔돌핀을 선사하는 동생들의 마음 씀씀이가 .. 엄마의
악화되었던 병세를 호전케하는 무엇보다 강한 약효가 되었다.
▲ 평소에 꽃나무들을 즐겨 가꾸셨던 부모님들..
꽃을 보시며 마음이라도 좀더 상쾌해 지시라고 사다놓았다.
조카들도 할머니의 쾌유를 바라는 마음으로 화분을 사다놨다.
휠체어를 타시고 마을을 빙 둘러오는것이 하루 일과중 한가지..
어눌했던 말씀은 많이 좋아지셨는데.. 밥은 아직도 넘기기가
힘드신 모양인지 두~세 수저만 드시면 고개를 내저으신다.
캔에 든 죽과 음료가 밥을 대신해 빨대로 드시며 연명하신다.
▲ 평소엔 제대로 한번 엄마를 찾아뵙지 못했고.. 전화또한
드리지 못했던 자식들이 시골에 계시는동안 자주들 찾아오고
이야기도 나눠드리니.. 꽤나 행복 하시단다.
살아 계신동안 그 마음들이 변치 말아야하는데.. '몸이 떠나면
마음도 떠난다'는 말이 있듯.. 아마도 다른곳에 정착해 계시면
나 부터도 찾아다니기 쉽지 않으리란 생각이 든다.
저 세상으로 가실때엔 서운한 마음일랑 없으셔야 하는데..
▲"내가 죽어야 하는데 니들까지 고생시키고.. 무슨죄를 지어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일어서다 쓰러지시면 고통
스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울먹이신다.
시골에서 내집으로 모셔오며..'한달만 모시겠다' 했더니 동생이
말린다. 엄마도 사위가 어려우신지 오래 계시려하질 않으셨다.
걸음 연습을 시켜드리려 '실버카'를 구입했다.
자전거처럼 손만잡고 방향만 틀어주면 실내에서도 천천히 걷는
연습을 할 수있다. 몸체도 작고 가벼워 불편하지도 않다.
2주를 내 집에서 모시고 나니 막내가 모시고 가겠단다.
병원으로 모시자는 오빠들의 의견이 있었지만, 병원보다야
자식의 간병이 낫지 않겠냐는 동생의 선택이다. 허지만..
동생이 힘겨울 생각에 오누이들은 고맙고.. 부담도 되어진다.
혹시라도 병원으로 모시게될지몰라 예약해 두었던 '효자병원'
을 해약하고.. 동생이 정 힘들면 훗날 병원으로 모시기로하고
엄마는 동생집으로 모셔갔다. 병고에 시달리시는 엄마도..
환자곁을 떠날수없는 24시간의 동생이 겪어야할 힘겨움도..
바라보는 가족 으로서 마음만 안타까울 뿐이다...♠